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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비즈니스 코칭(2)

/ 2023. 12. 6. 23:08

2017.08.02 07:55 크리스천투데이에 기고한 글

들어가며

크리스천 코칭에서 인간을 바라볼 때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며 그 유한성 안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펼칠 수 있다고 지난 시간에 이야기 했습니다. 한계를 가진 인간이 업무를 진행하다가 도움을 주고 받기 위해 주변 인물과 소통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러므로 팀으로 작업하는 업무 현장에서 도움을 주고 받기 위해서는 자신의 필요를 듣고 표현하는 훈련과 함께 타인의 필요를 듣고 표현하는 훈련이 요구됩니다.

크리스천 코칭에서도 성과를 내기 위해서 목표-현실-대안-실행-점검의 프로세스를 따르는 것은 일반적 코칭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크리스천도 한 인간으로서 자연인과 동일한 업무 현장의 현실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크리스천 코칭은 성취와 업적으로 인해 자신의 위대함에 도취되는 자아도취를 경계합니다. 자기에 도취하면 자신에게 과하게 에너지가 집중되기에,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태도를 취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태복음 22:37]). 또 다른 이유는 자아에 도취된 리더, 중간관리자, 임원, 경영자는 예스맨으로 자신의 주변을 채워서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게 되기에 주변 환경과 건강한 상호작용이 어려워지고 궁극적으로는 지속가능한 조직을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크리스천 코칭의 세계관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하나님은 이 세상의 통치자이십니다. 크리스천 코치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의 백성이며 이 나라에서 통용되는 방식으로 사람들과 일하고 관계를 맺습니다. 따라서 신앙을 가진 크리스천 코치가 진행하는 비즈니스코칭과 라이프코칭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진행하는 코칭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적 비즈니스 코칭은 기독교 신앙 밖의 이슈처럼 생각할 수 있지만 하나님이 천지를 만드신 이 세상의 주인이심을 인정한다면 비즈니스 역시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영역임을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비즈니스 영역에서도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 나라의 가치는 여전히 중요합니다(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잠언11:1]). 비즈니스 영역은 신앙생활과 별개로 분리된 두 개의 영역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비즈니스와 관계 모두의 주인이시며,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크리스천 코치는 성도의 신앙과 신앙이 아닌 것으로 나눠진 이분법적인 시각을 극복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이분법적인 시각은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우리의 고백과 고백한 대로 살아야 하는 우리의 삶을 별개로 분리시켜 우리를 하나님께 온전히 내어드리는 데 방해가 됩니다.

예컨대, ‘주일성수’라는 말은 주일을 기억하고 거룩하고 지킨다는 말인데, 이 말은 주일 외 다른 날은 거룩하지 않게 살아도 된다는 말로 오용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특정한 한 날을 잡아서 거룩하게 지키려고 하면 할수록 나머지 날들은 거룩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일 외 나머지 날들을 거룩하지 않아도 될 특권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을 위하도록 부름받은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주일만의 주인이 아니라 나머지 요일들의 주인이시기도 하십니다. 우리는 주일 뿐만 아니라 모든 요일에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태도’를 취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주일 하루만 거룩하게 지키려고 애쓰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주인이심을 인정하는 태도에 더 가깝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주일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요일의 하나님이시고 성도 혼자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성도와 함께 일하는 모든 사람들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우리가 하나님을 주인으로 고백한다면 우리가 하는 비즈니스는 신앙 외 별개의 영역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영역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식으로 진행해야 함은 두말 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무리

성경적 비즈니스 코칭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고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를 원한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따라서 비즈니스 영역에서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정직함과 성실함이 요구됩니다. 비즈니스코칭에서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의 개입을 제외시키고 인간적인 비즈니스 목표와 성과만을 다룰 수 없습니다. 크리스천 코칭은 주일(주의 날)과 주의 날이 아닌 것, 거룩한 것과 부정한 것, 예배와 예배가 아닌 것, 하나님이 모든 것의 주인이시라는 고백과 그 고백한 대로 살지 못하는 삶이 서로 분리된 채 유지되는 고착되는 것을 경계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주일에 교회건축물에만 계신 분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실존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 내 삶의 이분법적인 시각을 10점 척도로 점수를 매긴다면 몇 점이 됩니까?(10점에 가까울 수록 고백과 삶이 많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 나는 일터에서 얼마나 ‘주께 하듯’ 하고 있습니까? 10점을 최고 점수로 10점 척도로 표현한다면 몇 점을 줄 수 있습니까?
- 만약 점수가 만족스럽지 않다면 어떤 대안이 있습니까?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02849

Posted by SuperFineT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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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비즈니스 코칭(1)

/ 2023. 12. 6. 23:06

2017.06.16 10:19 크리스천투데이에 기고한 글

들어가며 

코칭은 고객이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자원을 확보하고 어려움을 극복할 전략을 세우며 실행하게 도와주는 대화 프로세스입니다. 이를 위해서 코칭에서는 다음과 같은 보편적인 철학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모든 고객은 1) 창의적이다 2) 자기 문제에 관한 한 해결능력자원을 다 가지고 있다 3) 전인적인 인격체로 보는 것이다 입니다. 크리스천 코치는 코칭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적용해야 할까요? 기독교인들과 비기독교인 모두 살아가는 동안 실존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은 동일합니다.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창3:17) 따라서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 모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며 업무현장에서 한 인간으로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취하는 절차는 유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성경적인 관점에서 기존 코칭을 들여다보고 어떻게 다른지 고민해 보겠습니다.

 

성경적인 코칭철학

크리스천 코칭을 이야기할 때 중요한 것은 코칭철학이 성경적인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만약 인간이 자기 문제에 대한 해결능력자원을 모두 다 가진 존재였다면 인간은 자신을 스스로 구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은 자신을 스스로 구원할 수 없었기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그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3:23~24) 따라서 인간은 유한성을 가진 존재이고 그 유한성의 테두리 안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펼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성경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자신이 한계를 가진 존재인 것을 인지했다면 업무현장에서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고, 타인의 말을 들을 수도 있게 됩니다. 왜냐하면, 내가 가진 한계를 채우는 데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무한한 가능성과 자아도취

코칭이 도입되고 보급되면서 인간에게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낮은 자존감으로 자신을 새롭게 봐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 누군가로부터 지지가 필요한 사람, 새로운 도전에 힘을 얻고 싶은 사람 등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습니다. 반면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상황도 있습니다. 자아에 도취하여 끊임없이 성취와 ‘위대함’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확신을 주었습니다. 자아에 도취하면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습니다. 항상 자기만 보이고 자기가 너무 위대하고 크게 느껴집니다. 이런 현상은 신앙인에게도 있을 수 있습니다. 내 힘으로 힘써 쌓는 종교 생활은 하나님과 관계없는 나의 위대함과 무한한 성취로 변질되기 쉽습니다. 하나님이 없이 내가 주인이 되어 살고 싶은 옛 자아를 강화시키고 자기에게 도취하게 만듭니다. 공동체와 조직에서 믿음 좋은 거대한 인물로 인정받는 것을 추구하며 하나님 없는 신앙생활을 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누가 우리의 주인인가?’를 끊임없이 물어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본성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스스로 자기와 인생의 주인이 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본성은 내가 나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내 맘대로 할 수 있을 때 내 존재감이 느껴지고 내가 위대한 것처럼 느껴질 것이라는 환상을 추구합니다. 만약 나의 위대함과 성취가 인생의 목적이 된다면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부르신 목적에 배치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광을 위해 우리를 부르셨지 우리가 무한한 가능성을 실현하며 위대함을 드러내게 하려고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1:26~29) 무한한 가능성과 위대함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사람 중 실제로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드러낸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은 무한한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 애쓰는 동기와 그 열매가 무엇인지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어야 합니다. 위대함과 성취를 추구하는 만큼 그 마음의 이면에는 자기가 부족하다는 느낌, 그래서 타인에게 크게 보이고 싶은 마음, 위대하지 못하기에 느끼는 공허함, 자신이 무너질 것에 대한 두려움 등이 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위대함과 무한한 가능성을 추구하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습니다. 자아에 도취한 사람은 자신을 숭배합니다. 자신을 숭배하기에 타인도 자신을 숭배하도록 요청합니다. 업무현장에서 자신의 성취와 위대함을 위해 조직 구성원들의 정서를 착취하기에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할 수 있습니다.

 

마무리

크리스천 코칭에서 인간은 유한성을 가졌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합니다. 인간에게는 한계가 있고 그 한계는 하나님과 타인의 도움으로 채워질 수 있기에 기도하고 도움을 요청하고 듣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크리스천 코칭은 성취와 성공으로 인한 자아도취를 경계합니다. 왜냐하면, 자아도취는 위대한 나를 추구하기에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관심이 없습니다. 타인을 정서적으로 착취하며 팀과 조직을 경직되게 만들고 소통을 어렵게 합니다. 지속 가능한 조직은 끊임없이 소통이 필요한데 소통이 어려워지면 지속 가능성도 어렵게 됩니다.

 - 나는 한계를 가진 사람임을 편하게 수용하며 도움을 요청할 수 있습니까?
 - 업무현장에서 내 성취가 하나님과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습니까?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01394

 

Posted by SuperFineT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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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증적 집단

/ 2021. 5. 18. 23:51

이솝우화에 등장 하는 '벌거숭이 임금님'은 마음이 아픈 사람이다. 자기를 좋게 볼 수 있는 힘이 없다. 자기 감정과 마음에 충실하기 보다는 자신이 타인에게 어떻게 보일지가 더 중요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자기객관화'가 안 되었다. 임금님은 살아오면서 자신의 가치가 타인의 평가로 규정되는 왜곡된 경험을 했는지도 모른다. 임금님은 자신을 멋지게 봐 주는 사람이 필요했다. 진실을 얘기하는 사람들에게는 눈과 귀를 닫았다. 대신 거짓말쟁이들과 사기꾼이 꼬였다. 이들은 거짓말 호감을 사며 권력을 맛 보았다. 임금님과 이들은 모두 진정성이 없다. 진정성은 being true to oneself로 정의 된다.

마음이 병든 어떤 사람들은 높은(돈, 명예, 권력) 자리에 집착한다. 특별해 지고 싶다. 이들도 자신이 특별하다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예스맨과 아첨꾼이 모여든다. 마음이 병든 사람은 자기 마음이 병든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 또한 자기들이 거짓말을 하거나 사기를 치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손해 볼 짓은 하지 않는다. 이들에게도 진정성은 없다.

오늘 날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여러 집단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단체, 가정, 교회, 회사, 부서, 팀 등 건강하지 않은 임금님(리더) 주변에 몰려들어 거짓말을 하는 자들은 높은 자리를 차지한다. 높은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은 또 다시 비슷한 사람들을 불러모은다. 어떤 집단이 건강하기 보다 아프기 더 쉬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To be continued 

Posted by SuperFineT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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